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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공급자 등록기준, 범업계 논의 ‘스타트’

야광너구리 2016. 3. 7. 13:50

 

전기신문/ 2016022618:15

이석희 기자  xixi@electimes.com

 

 

한전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통하는 공급자 등록기준 개정을 놓고 범업계 차원의 논의가 시작됐다.

한전의 공급자 등록기준 자체가 낡고 오래돼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천편일률적인 기준이 변화된 제조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 직접생산에 대한 개념정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한전 자재처는 지난 1 28일 전력업계 전체를 대상으로 ‘기자재 공급자등록 현장심사기준 개선 T/F 킥오프 회의’를 열고 의견 수렴에 나선 바 있다.

한전은 향후 업계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제조설비, 보유인력, 공장여건 등 현장심사기준 등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특히 기자재별로 적정 보유인력과 경력기간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내용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전 관계자는 “송·배전 분야별, 품목별로 요구하는 제조인력과 시험설비가 다른데도 현행 현장심사기준은 천편일률적으로 규정돼 있어 재정리가 필요하다”며 “이번 기회에 공급자 유자격 등록기준에 대한 전방위적 논의를 통해 재정립과 표준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전 440개 신뢰품목 관리…공급자 등록기준 ‘일종의 진입장벽’

한전은 국가 전력인프라 구축을 위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핵심기자재를 크게 26개 품목군으로 묶어 ‘신뢰품목(440)’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변압기, 수배전반, 전선, 개폐기, 전력량계, 피뢰기, 애자, 금구류 등이 포함된다.

신뢰품목에 해당되는 기자재를 한전에 납품하기 위해선 기업의 제조능력, 경영상태 등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유자격업체로 등록이 돼야 한다. 기자재 품질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인 것이다. 등록된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볼 수 있다.

공급자 등록기준 중에서 현장심사기준은 한전이 요구하는 기자재를 기업에서 제조할 수 있는 지를 판단하는 잣대다.

제대로 된 설비와 전문 인력을 갖춰 제품을 생산하는 지가 주요 평가대상이다. 말 그대로 기업의 제조능력을 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설비·인력·공장여건 등 제조능력에 대한 수준은 제품의 품질과도 연관성이 깊다. 더 좋은 설비와 더 많은 전문 인력을 확보할수록 고품질의 제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현장심사기준의 수준을 어디에 두고 개정하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수준을 낮게 잡으면 신규업체들의 시장진입이 활성화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업체들의 난립을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는 곧 등록기준의 완화와 강화 얘기로 이어진다.

특히 기업의 제조능력에 대한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직접생산의 범위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기업이 분업화가 활성화된 현대산업에서 과연 어디까지 직접 생산해야 하는 가의 문제다.

 

◆완성품과 핵심공정에 대한 개념정리 필요

 기업의 제조능력을 판단하는 요소에는 기술능력 검증도 포함된다.

설비와 인력을 갖췄어도 실제 규격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부분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직접제조 여부다. 설비와 인력은 그럴듯하게 갖춰놓고 제품 생산 대부분을 외주공정에 맡기는 것은 현장심사기준의 제도 취지에서 벗어난다.

그럼 제조사는 완제품 생산에 있어 어느 부분까지 외주 공정에 나설 수 있을까.

일각에선 완성품과 핵심부품, 핵심공정 등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품목의 경우 부품 대부분을 외산에 의존하고 있어 완성품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면서 “한전과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완성품과 직접생산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각 품목별로 핵심공정의 범위가 다르니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현장심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완제품의 핵심부품이나 핵심공정은 유자격으로 등록된 제조사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변압기를 예로 들면 코어와 철심공정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품목별로 필수(핵심)공정의 범위를 정해 등록된 제조사가 직접 부담케 해야 하고,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며 “일부 부품에 대한 외주공정이 인정되더라도 유자격등록 제조사의 책임을 강화하면 자체적인 기술능력 검증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심사기준 ‘강화 VS 완화’

최근 업계에선 기존 한전 유자격업체를 중심으로 공급자 등록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장심사기준의 수준을 현행보다 높여 업체들의 난립을 막아야 하며, 유자격을 갱신하는 경우에도 엄격한 심사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낮은 진입장벽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신규업체들이 많아지면 결국 제품의 품질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최근 1~2년새 일부 기업은 변압기와 전력량계 등 품목에서 전문적인 제조경험이 없이 인력과 설비만 갖추고 한전시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수십년간 해당 품목에서 전문성을 키운 업체들은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 규격은 워낙 까다롭고 정기적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수십년간 해당 품목에서 한 우물만 파온 기업도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적인 기술력이나 인력 확보 없이 뛰어든 신규업체들이 과연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 한 번 유자격을 획득했다고 해서 이를 ‘언제나 통하는 프리패스’로 여기면 안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유자격 갱신 때마다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한전이 요구하는 제조와 기술능력을 갖추고 있는 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턱을 낮춰 신규업체들이 많아지면 한전으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등록업체가 다양해질수록 품질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등록기준을 강화할 순 없다. 신규업체들에게 일종의 규제로 작용, 진입장벽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일각에선 신규업체의 시장진입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등록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공급유자격 등록제도 자체가 공정거래 차원에서 거래상대방(제조사)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담케해 일종의 경영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조건적인 현장심사기준의 강화는 신규업체들에게 가혹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품질문제는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해결하고, 시장 활성화와 제도 취지를 고려해 적정선을 찾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